과거 군사정권 시절 한국 정부가 해외 한인사회를 통제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수단 중 하나가 외국 국적 동포들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였다. 반정부 인사나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한인들의 고국 방문길을 가로 막았던 것이다. 한국 국적의 반체제 인사들에게는 입국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겠다는 위협을 하기도 했다. 역시 해외 한인들의 재갈을 물리는데 위력적으로 작동했던 수단이었다.
최근 김완중 LA 총영사가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들을 향해 ‘입국금지’를 건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어 한인사회를 놀라게 하고 있다. 군사정권에서나 쓰던 시대착오적인 해외 한인사회 통제 방식이 민주정부 3기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되살아난 셈이어서 당혹감을 감추기 어렵다.
입국금지를 건의하겠다며 총영사가 공개적으로 밝히 사유도 석연치 않다. 김완중 총영사는 그간 공개 석상에서 수차례 반복적으로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들에 대한 입국금지를 건의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페르소나 넌그라타’(Persona Non Grata)라는 고상하고 ‘품격 있는’ 전문 외교용어를 구사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비우호적 인물’이란 뜻을 가진 이 외교 용어는 한 국가가 외국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할 때 사용한다. 대체로 국가안보 등의 이유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대 국가의 외교관이나 고위관리의 입국을 거부할 때 외교적 수사로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미 시민권자로 비영리단체 이사직을 맡고 있는 한인들에게 총영사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국금지’를 위협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비상식적이며 반인권적이다.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도 군사정권 이후 총영사관이 특정 한인 동포를 지목해 입국금지 조치를 건의한 적이 없다며 김 총영사의 발상이 무리한 것임을 시인하기도 했다.
재외동포출입국 법률은 입국금지 사유를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전염병 등으로 공중위생에 위해 염려가 있거나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 입국금지 조치가 가능하고,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거나 사리분별 능력이 없거나 체류비용 부담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제한적으로 입국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김 총영사의 ‘입국금지’ 카드가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미 김 총영사의 ‘입국금지 카드’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업 차 한국 출입이 잦았던 심모 이사장이 사퇴했고, 김모, 이모 이사 등도 물러났다. 입국금지 때문이었다. 카드가 제대로 먹힌 셈이다.
남가주 한국학원 사태에 대해 현 이사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부실 운영에 대해 이사들도 스스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총영사관 스스로 자신의 책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교육영사를 당연직 이사로 파견해 이사회를 견제, 감독해 온 이사회의 한 축이 바로 총영사관이다. 남가주 한국학원 부실 사태에 마치 아무런 책임이 없는 양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김 총영사는 건물 임대계약 논의가 진행되던 지난 5월과 6월 네 차례나 연속 교육영사의 이사회 참석을 막아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당시 교육영사는 이사회 4회 연속 불참이 총영사의 지시였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이사들의 책임을 묻는다면서 2세들을 볼모 삼아 한글학교 지원금을 중단한 조치는 자가당착적인 자세를 김 총영사 스스로 시인한 감정적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이 무엇인지 김완중 총영사에게 묻고 싶다.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눈 밖에 난 한인들은 입국금지 카드로 위협하고, 정부지원금을 무기 삼아 한인 단체들 길들이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재외동포정책인지, 아니면 총영사 개인의 ‘몽니’인지 답변해야 한다.
<김상목 K-News LA 편집인 겸 대표기자>
♠이 글은 2019년 7월 미주 한국일보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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