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맥도날드가 책을 낸다고 했을 때 놀라웠다. ‘한국 시장 진출 35년사’를 정리한 내용이라고 해서 더욱더 그랬다.
30년도, 40년도 아닌 ’35년’이라는 시간도 특별했고, ‘책’이라는 올드, 오프라인 미디어도 색달라서였다. 게다가 매장에서 무료 배포하지 않고, 대형 서점에서 판매(물론 수익금은 전액 중증 환아와 가족들을 위한 병원 옆 쉼터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에 기부되지만…)하겠다는 ‘용기’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3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한 시대 변화와 해외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들의 대거 진출로 더욱더 격화할 시장 상황 속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겠다”는 각오의 발현이겠구나 싶었다.
5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성대하게 거행한 ‘창립 35주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맥도날드는 책 두 권을 공개했다. 200여 명 참여, 10개월의 준비와 집필, 약 40만 장에 달하는 사료 등을 토대로 탄생한, 가히 ‘역작’이다.
맥도날드의 ‘M’자 아치 로고 마크를 보지 않아도 노란색과 빨간색, 시그니처 컬러만으로 ‘맥도날드 책’ 느낌이 풀풀 풍겼다.
한 권은 빨간색 배경에 아치 로고가 들어간 책이다. ‘히스토리 북”(History Book)이라는 표제처럼 ‘한국맥도날드 35년사’가 상세하게 담겼다.
1988년부터 2023년에 이르는, 파란만장했던 ‘맥도날드의 한국 시장 안착기’다.
맥도날드를 ‘입’은 물론 ‘눈’과 ‘귀’로도 즐겨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느낄 만하다. 게다가 맥도날드의 ‘영업 비밀’도 가득하다.
아쉽지만 임직원, 미디어, 대학 도서관 등에만 배포할 뿐 시판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서’를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겉을 채색한 것일까.
아무튼 경쟁사 관계자는 물론 외식, 마케팅 종사자라면 ‘당근’을 해서라도 꼭 손에 넣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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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신림점 서문수 점장, 서유란 크루, 이태원점 서석봉 크루(왼쪽부터, 맥도날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른 한 권은 앞표지에 먹음직스러운 ‘빅맥’ 사진과 M 로고 마크가 그려진 ‘한국맥도날드 35년 브랜드 스토리'(McDonald’s Korea 35 Years of Feel Good Moments)다.
‘히스토리 북’과 달리 주요 서점 매대를 장식한 이 책은 맥도날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맥도날드 수장 김기원 대표이사(CEO)는 스페셜 인터뷰 ‘우리의 역사에는 우리 모두의 경험과 추억이 담겨 있다’를 통해 35년을 회상하고 ‘동네 찐친’으로 고객과 40년, 50년, 100년을 함께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BTS 캠페인’을 추진한 한국맥도날드 이해연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 ‘빅맥 송’ 캠페인을 주도한 마케팅 대행사 퍼블리시스그룹코리아 노유경 대표, ‘맥딜리버리’ 도입에 앞장선 MDS 프로젝트팀 리더 출신 이훈민 맥도날드 군포산본DT점 점주 등이 차례로 그간 한국맥도날드의 실제 ‘터닝 포인트’를 상세히 소개해 흥미를 더한다.
한국맥도날드 이진희 이사와 맥도날드 상암DMC점 이주영 팀리더가 맥도날드의 ‘맛’을 논한다면, 각각 복수의 맥도날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김선주, 김수환 점주는 “맥도날드의 교육, 인생을 배웠다”고 평한다.
한국맥도날드 하만기 SCM 이사와 오뚜기 BS1 영업부 황동건 부장이 ‘상생의 파트너십’ 가치를 짚고, 각기 청년·장애인·시니어를 대표하는 맥도날드 신림점 서문수 점장, 서유란 크루, 이태원점 서석봉 크루는 경험을 바탕으로 ‘열린 채용’의 의미를 증언한다. ‘창녕 갈릭 버거’ 파트너였던 농부 표상호씨와 경남 창녕군 농산물유통팀 하정욱 팀장은 ‘테이스트 오브 코리아'(한국의 맛) 취지에 공감한다.
해피밀 토이 수집가 방호열씨와 트레이 매트 수집가 이은숙씨의 ‘추억’도 들여다 보고, 배우 박철민씨를 필두로 수많은 고객의 진솔한 사연도 나다.
재단법인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제프리 존스 회장은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함께’의 의미를 설파한다.
책은 254쪽에 달하지만, 인터뷰, 대담, 수기 등 방식도 다채로운 데다 사람들이 직접 겪은 일들답게 하나하나 생생해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음식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박찬일 셰프, 김갑용 소설가, 김용진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등이 맥도날드와의 인연을 꾹꾹 눌러 쓴 칼럼도 흥미진진하다.
‘맥도날드 압구정점’ 앞에서 친구들을 만나 2층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추억이 있고, 2010년 ‘맥도날드 할머니’를 처음 단독 보도했던 기자이면서 “‘별다방’ ‘콩다방’보다 ‘맥카페’의 아메리카노 맛이 더 좋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고객이라서 기자가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빅맥이나 맥카페를 즐기고, 열대야나 한겨울 밤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쉬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QSC & V'(Quality, Service, Cleanliness & Value), ‘세 다리 의자'(본사·가맹점·협력사의 협력과 상생) 등 맥도날드 창업자 레이 크록(1902~1984)의 경영 철학, 빅맥에 뒤지지 않는 인기를 누리는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 ‘슈슈버거’ 등 한국 로컬 메뉴, 맥도날드 공간 인테리어, 차에서 주문하는 ‘드라이브 스루'(DT) 등 맥도날드에 관한, 조금 더 깊이 있고 풍성한 이야기도 수록됐다. 관련 업계 종사자나 마케팅 전공 학생이라면 얻는 것이 적지 않을 테고, 일반인도 친구, 연인, 가족과 맥도날드 매장에 갔을 때 화제로 올리기에 알맞다.
이 책에 이처럼 읽을거리가 차고 넘치지만,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외식 브랜드가 펴냈는데도 ‘쿠폰’이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기자 간담회 당일 오후 출간해 곧바로 국내 주요 온라인 서점 내 ‘기업/경영 스토리’ 분야 판매 상위권에 올랐다. 마침내 2주 만에 1쇄가 완판해 2쇄 인쇄에 들어갔다. 기업의 사사(社史)가 국내 서점에 정식 유통된 사례는 이례적이고, 잘 팔려 2쇄 인쇄를 한 것도 최초라고 한다.
이런 성과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과 평가가 나올 것이다.
기자는 이러한 베스트셀링 비결은 ‘읽을 가치가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재미있어서든, 유용해서든,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든 이 책은 읽을 만하다.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굳이 맥도날드에 가는 이유가 ‘먹을 가치가 있어서’인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