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포성 속에 놓인 시간이 24일(현지시간) 만으로 두 해를 가리킨다. 그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발자취를 남겨왔을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손쉽게 장악하고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압도적 화력으로 우크라이나를 누르지 못해 전쟁은 장기화했다.
2주년을 맞은 양국 상황을 짚어보면 뒷짐을 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분서주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관망하는 모양새다. 길어진 전쟁 동안 우크라이나는 안팎의 정치·군사적으로 어려움을 맞았다. 원하는 구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국내·외 상황에 속이 탄 젤렌스키 대통령은 동(전선)과 서(서방)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단기전 승리 실패와 지난해 6월 반란에도 여유를 보이고 있다. 지난 16일 정적(政敵) 알렉세이 나발니가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으면서 다음 달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수세 속 우크라이나, 군 수뇌부 전면 쇄신으로 ‘분위기 반전’ 노려
전쟁 2주년을 코앞에 두고 동부 요충지 도네츠크주 아우디이우카를 내주면서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는 군수뇌부를 줄줄이 교체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며 분위기 쇄신에 나서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5월 러시아에 핵심 지역인 바흐무트를 내주면서 수세에 몰렸다. 한 달 뒤에는 판세를 뒤집기 위해 동·남부 전선에 대반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교착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에서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다가온 기회를 우크라이나는 잡지 못했다.
대반격 부진 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내부 개혁에 나섰다. 그는 부패 청산을 이유로 지난해 8월 전국 병무청장을 모두 교체했다. 이를 두고 발레리 잘루즈니 당시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해당 업무를 가장 잘 수행할 인사를 모두 제거해 원활한 징병 업무를 어렵게 했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대반격이 교착상태에 있다”고 발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마찰도 빚기도 했다. 전황의 교착을 인정하는 행위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지원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착’이라는 표현을 거부했다.
성과가 미진한 군사 작전 속 내홍 조짐이 보였던 우크라이나는 군 지도부를 전면 교체했다. 먼저 군을 총괄할 국방장관을 교체했다. 지난해 9월 개전부터 자리를 지켰던 올렉시 레즈니코우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 국유재산기금 대표를 지낸 루스템 우메로우에게 직을 넘겼다. 신임 우메로우 장관은 부패 문제로 얽혀있던 국방부를 쇄신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달 초에는 전면적 군 수뇌부 인사를 단행해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우메로우 장관을 보좌하게 됐다. 해당 인사로 지상군·국토방위군·합동군·공중강습군(공수군) 등 사령관급 인사가 연달아 났다. 하지만 바흐무트 함락 뒤 최악의 피해로 꼽히는 아우디이우카 함락으로 인적 쇄신은 바람이 빠지게 됐다는 평이다.
앞서 징병 연령을 하향하고, 군 동원 목적으로 전자 명부를 작성하는 등 대국민 동원능력을 정비한 와중에 전장에서 흉문까지 전해지면서 젤렌스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으로 행보에 큰 압력을 받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계엄령 아래 선거 없다”…총선 밀린 우크라이나, 대선도 ‘다음에’
전쟁 발발 뒤 계엄령을 선포한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총선거를 건너뛰었다. 올해 대선도 예정대로 열리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선거가 없이 두 해를 보낸 우크라이나는 내부에서 불만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선거로 2019년 젤렌스키 대통령을 배출한 우크라이나는 일정상 5년이 지난 올해 대선이 열려야 한다. 평시였다면 법정 선거일은 다음달 31일이 된다. 하지만 헌법상 계엄령 발효 중인 현재는 선거 실시가 금지된 상태다. 개전 뒤로 연장을 통해 계엄령을 이어온 우크라이나는 계엄령을 끝내거나,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선거를 치를 수 없다. 대의 민주주의와 공존하는 유권자 권리가 온전히 실현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크라이나 유권자는 투표권 박탈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KIIS)가 지난 5~1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선거를 위해 계엄령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거나 ‘선거가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각각 4%, 11%에 그쳤다.
다만 미묘한 지점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지지다. 앞선 조사에서 응답자 69%가 ‘계엄령이 끝날 때까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하면서도, 차기 대선에서 그를 지지하겠다는 국민은 절반 수준인 53%에 머물렀다. 이는 지난해 12월 조사와 비교해 6%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지난해 12월 여론조사 자료를 근거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가상 대선에서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에게 간발의 차로 승리한다고 보도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누른다는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올해 대선이 실시되면 그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유일한 맞수가 될 수 있다는 세평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동시에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의 지지율이 과장됐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다만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의 실제 영향력과 별개로 외골수 군인이 현직 대통령과 대적할 인물로 하마평에 오른 일만으로도 우크라이나 내부에 전쟁 초기와 유사한 정치적으로 합치된 민심이 형성되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도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지점이다.
‘1강’ 체제 만든 푸틴 대통령, 다음달 대선서 5선 ‘정조준’
굳건한 독주 체제 안에서 푸틴 대통령은 다음 달 대선에 출마한다. 전선에서도 성과를 낸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확실한 5선 당선을 위해 내정에 힘쏟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을 비롯해 군 지도부에도 역동적인 변화가 없다.
대신 푸틴 대통령의 당선을 위한 작업은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반란을 일으켰던 프리고진은 비행기 추락으로 의문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다음 달 15~17일 열리는 대선을 앞두고 지난 16일 나발니가 급사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에서 유일한 푸틴 대항마로 꼽히던 나발니는 갑작스럽게 사망해 야권은 구심점을 잃었다.
그는 오는 29일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갖고 자신의 치적(治績)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연설 동안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 죽음과 관련한 언급을 하는 지에 쏠린다. 서방이 배후로 푸틴 대통령을 지목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지만, 그는 함구하고 있다. 이는 나발니 사망 사건이 정국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비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주도 선거구로 포함했다.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름반도도 선거를 치른다. 해당 지역에서 선거가 열리는 것만으로도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전공(戰功)을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일에는 그가 직접 선거 운동원을 만나 “우리는 국가의 발전과 모든 방면에서 독립과 주권을 강화하는 데 있어 매우 어렵고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항상 존재하는 더러운 거품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거 운동본부는 무소속 출마를 위해 필요한 추천 서명이 기준선인 30만 건을 크게 웃도는 200만 건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온 국민으로부터 크게 지지받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행위였다. 실제로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8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기관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CEC)는 이번 선거에서 전자투표를 일부 시행한다고 발표해 투표율 끌어올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를 두고 푸틴 대통령의 높은 투표율과 득표율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푸틴 대통령은 통합러시아당 출신으로 2012년 탈당해 이번 대선에 무소속으로 나선다. 1999년 12월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해 온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최대 2036년까지 연장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 그는 헌법상 제약으로 한 차례 2008~2012년 총리로 물러나 실권을 행사했고, 나머지 기간은 모두 대통령직을 맡아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오시프 스탈린 뒤로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 지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