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학계에 대한 예산 삭감과 정치적 압박을 가하면서 미국의 유수 대학 소속 연구자들이 독일의 대표 연구기관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30일 독일 막스플랑크협회(Max Planck Society)가 운영하는 ‘신진 여성 과학자 연구실’ 프로그램에 올해 미국에서만 81건의 지원이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25건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파트리크 크라머 막스플랑크협회 회장은 “다른 지역의 지원자는 예년과 큰 차이가 없는데 유독 미국만 신청이 급증했다”며 “지원자의 절반은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MIT, 국립보건연구소(NIH), 캘리포니아대 등 미국 주요 학술기관 소속”이라고 설명했다. 협회는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인원을 선발하기 위해 재정 확대까지 검토 중이다.
막스플랑크협회는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산하에 84개 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3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재임 시작 이후 ‘예산 절감’ 명분 아래 대학과 연구기관에 대한 지원을 전방위적으로 삭감했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유대주의 근절 요구를 거부한 하버드대에 외국인 유학생 등록을 막겠다는 조치까지 취하면서 미국 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을 포함한 각국은 ‘탈미국’ 연구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일 새 연립정부는 이달 초 출범과 함께 “글로벌 양극화 시대에 독일을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연구 안식처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향후 1천명의 국제 연구자 유치를 목표로 설정했다.
독일 정부는 이를 위해 12년간 총 5천억 유로(약 783조원)에 달하는 특별기금을 조성해 연구 인프라 확충은 물론 해외 인재 유치에도 투입하기로 했다.
볼프람 바이머 독일 문화장관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예술과 표현의 자유, 토론과 다양성을 지지하는 독일은 정치 탄압을 피해 나온 연구자들에게 ‘망명 캠퍼스’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하버드대와도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하버드대와 독일 정부 간의 실제 협력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학문적 조치가 전 세계 학술 지형에 실질적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박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