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백악관 이스트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각료들이 물가 안정을 논의하려 둘러앉은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멍청한 개×× 같으니(What a stupid son of a b××××).”
노골적인 욕설의 상대방은 인플레이션에 관해 질문한 폭스뉴스 기자였다. 취재차 이스트룸에 모였던 기자들은 당시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 끝나고 퇴장하던 중이었다.
마이크는 켜져 있었다. 차분한 어조로 욕설을 뱉은 바이든 대통령은 이윽고 어딘가에 귀를 기울이듯 왼쪽을 돌아보다 놀란 듯한 표정으로 다시 정면을 응시한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욕설이 공개적으로 이스트룸 전체에 울려 퍼진 상황에 당황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 시간 뒤에 해당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었다”라고 사과했지만, 현직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험한 말’의 파장은 컸다. 전 세계 언론이 당시 상황을 보도했고, 그의 이전 발언도 재차 도마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6월에도 미·러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 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관한 질문을 한 CNN 기자에게 “도대체, 당신은 항상 뭘 하는가(Where the hell, what do you do all the time)”, “일을 잘못 찾았다(you’re in the wrong business)”라고 쏘아붙인 적이 있다.
사실 미국 대통령이 기자를 향해 불쾌감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만 해도 공개 석상에서 여러 차례 언론과 설전을 벌였다. 그렇다면 이전 미국 대통령들은 과연 언론에 어떤 식으로 감정을 드러냈을까.
◆’가짜 뉴스’ 표현 즐겨 사용한 트럼프…CNN에 “말 걸지 마”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 기자들과 가장 많은 설전을 벌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진보 성향 매체를 겨냥해 몇 번이나 ‘가짜 뉴스’라는 표현을 썼으며, 언론의 질문을 공개 거부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위중설을 보도한 CNN을 공개 브리핑에서 “가짜 뉴스”라고 칭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4월 백악관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 위중설을 두고 “(CNN이) 오래된 문서를 사용했다고 들었다”라며 “부정확한 보도”라고 했었다. 이에 현장에 있던 CNN 기자가 북한 측과 연락을 주고받는지를 묻자 “그건 CNN의 가짜 보도였다고 생각한다”라고 매체명을 직접 입에 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당신이 진실을 쓰지 않는 게 문제”, “CNN은 가짜 뉴스다. 내게 말 걸지 말라”라고 쏘아붙였다.
같은 해 3월에는 코로나19 브리핑 중 또 다른 CNN 기자가 ‘코로나19 위기 경시’를 지적하자 “CNN은 그런 말을 한다”라며 “그게 사람들이 더는 CNN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라고 비난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어 “난 당신을 마이너리그 선수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라며 “빈정거리고 형편없는 질문을 하는 대신 진짜 질문을 해야 한다”라고 비난한 뒤 추가 질문을 일축했다.
◆”중국에 질문하라” 답변 논란도…진보 매체에 ‘민주당’ 딱지
코로나19 관련 질의 과정에서 “중국에 질문하라”라고 답해 논란을 빚은 적도 있다. 검사를 경쟁화한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질문을 던진 기자가 중국계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당시 질문한 CBS 소속 웨이자 장은 “왜 내게 특별히 ‘중국에 물어봐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인가”라고 따졌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는 그런 식의 형편없는 질문을 하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한다”라고 답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기자의 질문을 받으며 회견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질문권을 장 기자에게 양보했던 CNN 기자와의 추가 설전이 이어지자 “신사 숙녀들, 매우 고맙다”라고 인사한 뒤 퇴장해 버렸다.
그는 아울러 2020년 대선 전 공개 집회에서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MSNBC를 수차례 ‘MSDNC’라고 칭하기도 했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약칭을 매체명과 합성해 ‘민주당 매체’ 딱지를 붙인 것이다.
보수 성향 매체인 폭스뉴스 역시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는 그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5월 폭스뉴스의 코로나19 관련 보도 등을 겨냥, 자신의 트위터에 “폭스에는 진정 위대한 인물들도 몇 있지만, 일부 진짜 ‘쓰레기’가 온 네트워크에 널려 있다”라고 했었다.
◆부시, NYT 기자 “얼간이” 지칭…오바마 “질문 만든 공로 인정”
이보다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폴리티코와 타임지에 따르면 부시 전 대통령은 당선 전인 지난 2000년 노동절 집회 연설 무대에서 당시 러닝메이트였던 딕 체니 전 부통령에게 뉴욕타임스(NYT) 기자를 직접 거명, “메이저리그 얼간이(major-league asshole)”라고 칭했다.
역시 마이크가 켜진 상황이었고, 그의 발언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라인에 동영상으로 남아있다. 인콰이어러에 따르면 해당 기자는 부시 전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를 지내던 시절부터 기사를 써 왔다고 한다. 일종의 해묵은 감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보다 부드러운 설전도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7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관련 회견에서 이란에 미국인 인질이 있음에도 현 상황에 만족한다는 취지의 지적이 나오자 “그런 질문을 만들어 낸 공로를 인정한다”라고 비꼬았다.
이어 해당 지적을 “난센스”라고 일축하고, “당신은 (사안에 관해) 더 잘 알아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11년에는 자신의 말을 끊은 인터뷰 진행자에게 “다음 인터뷰 때에는 내가 답을 끝내게 해 달라”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역대 대통령들의 대언론 발언을 두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의 열띤 설전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며 “대통령들, 특히 일부는 다른 이들보다 언론에 더 오랫동안, 또는 더 심한 격분을 보였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