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폭동이 발발한지 32년이 됐다.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LA폭동은 한인타운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이는 고스란히 한인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당시 피해를 입은 한인 상점만 2,30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폭동이후 한인 커뮤니티와 흑인 커뮤니티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30년간 노력해 왔다.
정치인들은 간극이 좁혀졌다고 하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한•흑 커뮤니티는 확실히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매년 이 맘 때면 한•흑 커뮤니티 리더들이 서로 만나 악수하고 장학사업을 약속하고 한층 가까워졌음을 애써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한인들도 그렇게 느낄까?
4.29 폭동이 발생한 29일 한인타운에서 만난 한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 할머니는 “거리에 무서워서 나가기도 겁나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하고, “마켓을 걸어서 다니기를 10여년 했는데 최근에는 겁나서 혼자 걸어가기 무서워 옆집 사람들이랑 혹은 아이들(자녀들)이 왔을 때 함께 마켓을 가게 된다”고 말했다. 노숙자 흑인이 너무 많고, 노숙자 흑인에게 폭행당한 사람 소식도 자주 들리다 보니 길에서 흑인을 만나면 겁난다고 덧붙였다.
마켓에서 만난 한 한인은 “사실 길에서 흑인을 만나면 무서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흑인 노숙자가 많은 것이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커뮤니티 봉사활동을 하는 한 봉사자는 익명을 요구하며 “한•흑간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등, 한•흑 커뮤니티가 화합한다는 것은 다 정치적인 제스쳐일 뿐 그렇게 친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절도 사건이 많아지고, 노숙자 문제와 총격 사건이 늘어난 것이 아무래도 성실한 한인들이 범죄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하고 대부분 범죄자가 흑인이다 보니 다시 피하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흑인 커뮤니티가 나서서 커뮤니티 차원의 계몽과 봉사 그리고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인데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봉사자는 “커뮤니티 리더들이 한•흑 합동 행사도 하고, 서로 돕기로 했다지만 그들만의 이야기일 뿐.. 시민들로 그리고 차세대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타운내 요식업을 운영하는 이씨는 “타인종 고객들이 식당의 50% 이상을 차지하지만 흑인이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하고, “한인타운을 찾는 흑인도 적지만, 사실 흑인들이 식당을 찾게 되면 다른 인종 고객들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들이 모이면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는 생각, 그들이 모이면 사고가 발생한다는 생각 그런 선입견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흑 커뮤니티의 화합은 아직은 말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한인타운에서 거주하는 한인들은 아직 그들에게 내민 손이 맞잡혀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한편 4.29 폭동은 1992년 교통 단속에 걸린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관이 무죄 평결이 내려지지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동을 일으켰고, 마침 한인 슈퍼마켓에서 흑인 소녀가 업주의 총격에 사망한 “두순자 사건”과 맞물리면서 한인타운이 폭동의 타겟이 됐다.
당시 한인 사회에서는 타운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박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