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으로, 또 일본으로 이동하는 여정에 녹초가 됐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은 탓에 훈련도 순조롭지 않았다.
실력도 부족했지만, 강행군으로 인해 쌓인 피로로 인해 제 기량마저 발휘하지 못했다. 결과는 ‘도쿄 참사’로 이어졌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지난 8,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B조 1, 2차전에서 호주, 일본에 내리 졌다.
‘복병’으로 평가하면서도 객관적인 전력상 한 수 아래로 여기던 호주에 덜미를 잡혔다. 10일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크게 벌어진 전력차를 절감하며 4-13으로 대패했다.
2패만을 떠안은 한국은 8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2013년, 2017년 WBC에 이어 3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할 위기에 몰렸다.
WBC 대표팀의 이번 대회 준비 과정은 녹록치 못했다.
WBC 대표팀은 지난달 14일부터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 캠프를 차리고 합동 훈련에 나섰다. 따뜻한 곳에서 빠르게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대표팀 사령탑이지만 이 감독도 소속팀 KT 위즈를 챙기지 않을 수 없었기에 KT가 스프링캠프를 진행한 애리조나가 훈련지로 낙점됐다.
소속팀이 미국에 캠프를 차린 선수들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대표팀 훈련에 합류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양의지, 곽빈, 정철원 등 두산 베어스 소속 선수들은 호주에서 소속팀 전지훈련을 하다 한국에 일시 귀국했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괌에서 전지훈련을 한 김원중(롯데 자이언츠)도 마찬가지였다.
1월에 미국으로 가 훈련하던 원태인(삼성 라이온즈)은 소속팀 스프링캠프지인 일본 오키나와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이미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훈련을 시작했지만, 애리조나의 이상 기후는 대표팀을 반기지 않았다. 애리조나는 한파 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고, 눈까지 쏟아졌다. 비바람과 강풍도 몰아쳤다.
추운 날씨는 특히 투수들의 훈련을 방해했다. 추운 날씨 때문에 투수들은 제대로 투구 훈련을 진행하지 못했다.
KBO리그와 다른 WBC 공인구 적응도 숙제였으나 날씨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대표팀은 5차례 시범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도 조율할 계획이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3경기만 예정대로 치렀다. 2월 22일 치를 예정이던 KT와의 연습경기는 거센 비바람 때문에 하루 미뤄졌고, 6일로 예정된 LG 트윈스와의 연습경기는 아예 치르지도 못했다.
추운 날씨로 인해 투수들의 컨디션은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이 감독은 캠프 도중 투수들의 페이스가 더딘 것에 걱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훈련을 마친 뒤에도 고된 이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팀은 한국에 일시 귀국했다가 일본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도 변수가 생겼다. 이 감독과 코치 3명, 이정후(키움), 김광현(SSG 랜더스) 등 선수 18명이 탄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결항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들은 투손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850㎞에 달하는 거리를 버스로 7~8시간을 걸려 이동해야 했다.
대표팀은 1일 귀국 후 제대로 쉬지도 못한채 2일 고척돔에서 훈련에 나섰고, 3일에는 SSG 퓨처스(2군)팀과 연습경기를 했다. 충분히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라 SSG와의 연습경기를 쉽사리 취소할 수도 없었다.
4일 대표팀은 또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 오사카로 이동한 대표팀은 5일 훈련을 소화한 후 6~7일 일본프로야구 팀들과 공식 평가전을 했다. 7일 한신 타이거스와 평가전을 마친 직후에는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향했다.
이동 거리도 워낙 길었지만, 미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이동하면서 시차 적응 문제까지 겹쳤다.
강행군이 이어지자 선수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베테랑 선수들도 “이동 거리가 길다보니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1라운드에서 경쟁하는 호주, 일본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일본은 2월 중순부터 미야자키에서 훈련하며 컨디션을 조율했다. 이동 거리도 그리 길지 않았고, 시차 적응을 따로 할 필요도 없었다.
일본이야 홈에서 대회를 치르니 그렇다 치더라도, 호주와 비교해도 대표팀의 일정은 아쉬움이 남았다. 호주는 한국보다 열흘 일찍 일본에 와 현지 적응 훈련을 진행했다.
피로가 누적된 대표팀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불펜의 핵심 역할을 맡아줘야 했던 고우석(LG 트윈스)은 평가전 도중 목 통증을 호소해 본 경기에 아예 등판하지 못했다.
컨디션 조율에 더욱 애를 먹은 투수진은 구속도 평소보다 떨어졌고, 제구도 더 흔들렸다. 2경기를 치르면서 무려 21점을 헌납했다.
대표팀은 11일 휴식을 취한 후 12일 체코, 13일 중국과 만난다. 심신이 지친 대표팀에 단 하루의 휴식이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