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정모(33)씨는 지난 1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상담을 포함해 총 5차례의 난자 냉동 시술을 받았다. 정씨의 몸에서 채취된 10개의 난자는 3년간 냉동 상태로 보관에 맡겨진다. 아직 미혼인 그는 “일하다 보니 결혼 시기가 늦어졌는데 출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일종의 보험 삼아 난자를 동결했다”고 말했다.
결혼을 늦게 하는 만혼 현상이 젊은 세대에서 만연한 가운데 출산을 대비해 난자를 냉동 보관하는 미혼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결혼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두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아이를 낳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난자의 가임 능력을 보존하려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26일 차병원그룹이 제공한 ‘연도별 난자 동결 건수 및 동결 난자 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혼 여성이 난자를 동결한 시술 건수는 총 1194건으로 2020년(574건)에 비해 1년 사이 2배가량 증가했다. 2012년은 105건으로, 10년 사이 10배 넘는 여성이 결혼 전 난자의 장기 보존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차병원 난임센터의 한애라 교수는 “의학 정보의 대중화로 많은 여성들이 여성의 가임력은 나이에 따라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최근 몇몇 연예인의 난자 동결 및 이후의 임신 사례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사회적 난자 동결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결혼을 늦게 하고 출산 시기도 늦춰지면서 난임 문제를 피하고픈 일부 여성들이 난자 냉동에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의 초혼 연령은 31.1세로 전년 대비 0.3세 올랐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의 평균 연령은 32.3세로 전년 대비 0.1세 많아졌다.
직장인 김모(34)씨도 직장 커리어, 개인 사정 등으로 30대 중반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자 과거 한 연예인이 난자를 냉동했다고 이야기한 걸 떠올렸다. 이후 남자친구와 미래를 계획하던 중 출산이란 선택지를 만들어 두고자 최근 난임센터를 찾아 난자 냉동에 관한 상담을 받았다.
그는 “난 비혼이 아니지만 남자친구가 결혼 후 아이를 갖지 말자는 ‘딩크족’이었다”라며 “하지만 나이가 들었을 때 생각이 바뀌어 막상 아이를 가지려고 해도 나 때문에 아이가 안 생길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시술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 사이에서 난자 냉동이 미래 대비를 위한 선택지로 추천되곤 한다. 지난해 7월 시술을 마친 직장인 윤모(41)씨는 난임 등을 이유로 지인에게 냉동 시술을 추천 받아 450만원 비용으로 난자 10개를 냉동 보관하게 됐다.
윤씨 사례처럼 난자 동결 시술은 만혼 사회의 난임 문제 해결책으로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난자 동결 시술은 국민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해당하지 않아 시술 받는 사람이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평균 250~350만원이 소요되지만 난임 부부와 달리 미혼 여성에겐 지원이 없다.
이에 따라 미혼 여성의 시술도 경제적으로 지원해 난임에 대해 예방적 지원을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교수는 “난자동결 시술의 경우, 시험관 아기 시술과 달리 국민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과배란 유도 주사비용도 모두 비급여”라고 전했다.
이어 “채취된 난자는 일반적으로 그 개수 및 보존 기간에 따라, 동결 비용 및 보존 비용이 달라지며 20-30여개의 난자를 5년여 보존한다고 할 경우, 난자 채취 비용 수준의 동결 유지 비용이 발생하므로 비용 부담이 상당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