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 칼럼(17) “키스보다 황홀한 유혹, 이마저 사라지면”

인류가 사랑한 음료는 술과 차(茶) 그리고 커피라는 말이 있다. 이 중 와인은 술의 신(神) 박카스가 인류에게 선물하면서 헬레니즘과 크리스천 문화 속에서 인생과 문학, 예술의 주제로 자리잡고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와인이 정신을 흐리게 하고 이성을 잃게해 방탕한 생활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이슬람에서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대신 천사 가브리엘이 마호메트에게 주었다는 검은 음료 커피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커피가 정신을 깨워주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상징으로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발전되게 되었다.
  얼핏 서로 대립하는 두 문화권의 상대적인 이 두 음료가 성격이 아주 다르게 보이기는 하지만 서로 닮은 면도 있다. 포도 종류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달라지듯 커피도 품종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또한 즐기는 사람이나 장소 그리고 분위기나 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일본의 커피 최고권위자인 다쿠치 마모루는 커피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카페라테를 마시고 점심 후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밤에는 카페모카나 마키아토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하얀 눈 내리는 겨울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이리시 커피를, 땀이 송송 맺히는 여름엔 아이스커피로 시원하게 보낸다’고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커피는 블랜딩에 따라 그 맛 또한 천차만별이다. 최초의 블렌딩 커피는 예멘의 ‘모카커피’와 인도네시아 ‘자바커피’를 혼합한 소위 ‘모카자바(Mocha Java)’ 라고 하는 커피인데 모카의 달달한 신맛과 자바의 쓴맛이 섞인 특이한 맛의 조화가 애호가들의 환호를 받게 되었다. 
  이런 모든 커피의 원조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아라비카(arabica)’ 원두다. 그 옛날 해발 2000ｍ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인 ‘카파’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면서 이곳 이름을 따라 부르게 됐다는 커피. 
 

이 커피 재배지가 18세기 실론과 자바 등 동인도 지역으로 확장하기 전까지는 거의 200년 간 예멘과 에티오피아 두 지역의 커피가 모두 예멘의 무역항 ‘모카'(Mocha)’를 통해 해외로 수출되었다. 해서 ‘모카 커피’로 통칭되는 이 커피가 당시 커피의 맛과 향의 표준이었고 ‘모카는 커피’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된 거다. 그리고 예멘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에스프레소 커피 추출기를 ‘모카포트’라 하는가 하면 커피 성분이 들어간 빵을 ‘모카빵’이라고 부르는 등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밀한 단어로 남았다.
  아무튼 커피는 네델란드가 예멘에서 몰래 들여와 재배하다가 식민지배지였던 인도와 자바를 거쳐 신대륙으로 건너가 맨하튼을 식민지로 확장하면서 커피가 이곳에도 전파되었다. 
  이렇게 퍼져나간 후 유럽과 신대륙에서의 커피 문화는 많은 우여곡절 속에 부침을 거듭해 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1980년대 세계최대 커피 체인점인 ‘스타벅스’의 등장과 카페 문화가 대중화되고 무료인터넷과 아우러지면서 새로운 물결로 접어들었다.
스타벅스(Starbucks). 별과 달러란 뜻이 합쳐진 말일까? 꿈(별)과 현실(돈)의 양면이 겹쳐진다. 허지만 스타벅스의 로고엔 더 기묘한 양면도 있다. 로고에 있는 여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 ‘사이렌(Siren)’이다. 그녀의 이름에서 보듯 매혹적인 노래로 그 지역 해로(海路)를 지나는 선원들의 영혼을 유혹해 생명을 앗아가는 마녀였다.
  10년의 전쟁을 치루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이는 이곳을 지나게 되었을 때 선원들의 귀를 납으로 막고 자신은 기둥에 밧줄로 몸을 꽁꽁 묶었다. 마녀의 노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한 고통을 견뎌낸 덕분에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다.
  한편 ‘스타벅(Starbuck)’이란 말은 고래잡이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인물이다. 집착에 매달리는 선장과는 달리 이성적인 행위를 주장하는 일등항해사다. 이성을 마비시키려는 유혹자 사이렌과 이성을 지키려는 스타벅의 두 상반된 인물이 이 커피회사의 상징인 것이 과연 우연일까? 이 또한 어찌 보면 절묘한 조화가 아닐는지.

해서 그랬을까? 프랑스 외교가 탈레랑도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다.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스타벅스는 꿈과 현실, 이성과 감정 그리고 유혹과 각성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맛보게 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와인이든 커피든 이 음료들을 즐기는 것이 우리들 삶의 조그마한 순간순간들을 축제로 만들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아무튼 말 많고 탈 많은 이 커피에 사용되는 원두는 크게 원조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그리고 ‘리베이카’로 분류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커피 전문점에서 사용하는 원두는 ‘아라비카’로, 다른 원두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그 맛과 향이 뛰어나며 카페인의 함유량도 적기 때문에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헌데 이 ‘아라비카’가 2040년 쯤이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얼마 전부터 나오고 있다. 병충해와 이를 해결할 경제적 능력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커피의 카페인은 일종의 천연 살충제 역할을 하는데 아라비카는 다른 종에 비해 카페인 함량이 적어 각종 해충에 취약한 약점이 있다. 여기에 지구 온난화에 따라 그 피해가 심각해지고 아라비카를 생산하는 커피 농가들의 빈곤이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여력이 없어서다.
  기후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몰린 커피. 커피 애호가들에겐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거다. 

정치가 나폴레옹이나 프랭클린, 소설가 마크 트웨인과 발자크는 물론 음악가 등 각 분야의 커피 마니아들에 대해 남겨진 일화만 봐도 그 여파가 자못 상상이 간다. 

일례로 베토벤은 매일 커피콩을 60알씩 세어서 직접 갈아 마셨다고 한다. 헌데 이 60알의 무게가 오늘날 에스프레소 한잔을 만드는 양과 같다고 하니 우연의 일치일까 아님 자연의 이치일까 하는 것은 차제하고라도 그의 커피 사랑은 불멸의 작곡과도 밀접한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커피 칸타타(세클러 칸타타 211번)’을 작곡한 바흐도 ‘모닝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는 바싹 구워진 양고기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할 정도니 그야말로 커피나무 멸종은 커피 애호가들에겐 삶의 순간마다 유혹하는 뜨겁고 달콤한 동반자를 잃는 셈일 것이다. 이렇듯 커피는 각자의 삶 속에 차지하는 동반자일뿐만 아니라 다쿠치 마모루가 말한대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커피의 향과 맛의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간과 할 수 없다.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국들에서 어린이들이 장시간, 저임금에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향긋한 커피 한 모금마다 어린이들의 눈물이 얼룩져 숨어있음이다. 그러할진데 과연 그 열매를 따는 어린이들의 마음과도 이어질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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