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자유무역에서 후퇴하는 사이, 세계 많은 나라들은 관세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서로 무역 장벽을 낮추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미국은 자유무역 시장에서 점점 고립되고,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 사이에선 오히려 관세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6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각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선 이후 기존 무역 관계를 강화하거나 상호 무역을 새롭게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영국과 인도는 최근 수년간 교착 상태에 있던 무역 협정을 타결했다. 인도-영국 무역 협정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후 체결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인도는 전체 품목의 90%에 대해 관세를 인하하고, 10년 안에 대부분의 품목에 관세를 철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도 인도산 신발, 보석 등에 대한 세금을 낮추고 요리사나 요가 강사 등 인도 전문 인력의 입국을 쉽게 했다.
영국 정부는 이 협정으로 양국 간 무역이 향후 수년간 255억 파운드(약 47조5500억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과 인도는 2022년부터 무역 협정을 체결하려 시도했지만 협상은 지연됐고, 올해 2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계획이 구체화하자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영국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는 “미국의 관세가 시행됨에 따라 영국은 전 세계와의 무역 협정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플린트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무역 전문가 샘 로우는 “트럼프가 영국-인도 협정의 촉매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EU도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인도와 자체 협상을 진행 중이고, 지난주에는 아랍에미리트(UAE)와 무역 협상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남미 ‘메르코수르(Mercosur)’ 4개국과 협정을 맺기도 했다.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마로시 셰프초비치는 “우리는 전 세계 파트너들과의 무역 및 투자 관계를 계속 다양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10개 아시아 국가를 뜻하는 아세안+3의 재무장관들은 이번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역내 무역 확대를 통해 현재의 글로벌 무역 충격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12개 국으로 구성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코스타리카와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신규 가입국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 각국, 미국 외 시장서 무역 확대…”트럼프 관세 폭탄에도 세계화 여전”
세계 각국이 무역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 재선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데, 미국이 세계 경제 총생산의 26%를 차지하지만 수입 비중은 13%에 불과한 만큼 미국 외 지역에서 교역을 확대해 관세 피해를 상쇄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서식스 대학교 포용적 무역 정책 센터의 연구원인 아츄스 아닐에 따르면 미국의 관세 부과 이후 세계 각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해 관세를 면제받는 동시에 관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무역 협력을 강화하는 등 두 가지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아닐은 “확실한 한 가지는 각국이 이제 미국 외 시장에서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의 무역 전문가 데이비드 헤니그는 이런 현상은 세계화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세계화의 재편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이런 무역 협정들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밀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이자 세계무역기구(WTO) 전 부사무총장인 앨런 울프는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들이 관세를 인하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미국이 덜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이 된 지금 EU, 캐나다 등이 다른 파트너들과의 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대부분의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산업에 별도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달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전 세계 상품 교역량은 지난해 2.9% 증가했지만 올해 0.2% 감소할 전망이다.
한편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6일(현지 시간) 일부 주요 교역국과 이르면 이번주 무역 협상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과의 관세 협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번주 미국과 중국이 스위스에서 만나 양국 간 무역과 경제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