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마주 앉아 신구 권력 갈등을 봉합했다. 이로써 정권 이양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구 권력의 전례없는 극한 대립으로 파장이 컸던 만큼 이번 회동은 국민적 불안 해소와 화합에 무게를 두고 양측간 갈등 봉합에 무게를 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사권과 집무실 이전에 협조를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합의가 없고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언급도 없어 언제든지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선 19일 만에 만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2시간51분이라는 역대 최장 시간 회동을 가졌다. 만찬 장소인 상춘재에 들어선 후 실제 대화를 나눈 시간은 2시간36분이었다.
회동 시작부터 문 대통령은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것은 의례적인 축하가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정당간 경쟁을 할 수는 있어도 대통령 간 성공기원은 인지상정”이라며 윤 당선인의 마음을 풀어줬다. 윤 당선인도 “국정은 축적의 산물”이라며 “잘 된 정책은 계승하고 미진한 정책은 개선하겠다”고 화답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생이나 안보 현안 등 큰 이견이 없는 분야를 중심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지만,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신구(新舊) 권력 간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고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3시간 가까운 역대 최장시간 회동인 만큼 국정 전반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을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심도있는 대화나 협의는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날 문 대통령과의 회동은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인 2020년 6월 청와대 반부패정책협의회 참석 이후 1년9개월만이란 점도 성과물보다는 구원을 해소하고 신뢰관계 회복을 더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권에서는 허심탄회한 회동의 성격을 두고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민감한 현안 보다는 서로 이견이 없는 현안을 중심으로 논의하거나, 사전 조율한 의제가 없다는 점에서 모든 현안을 광범위하게 다루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장시간 대화에서 코로나19 손실 보상을 위한 2차 추경 편성, 인사권 갈등 문제,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대응 등과 같은 주요 현안에 대해 두루 논의했다. 반면 조국 사태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정부조직개편 문제 등과 같은 민감한 현안도 회동 내내 언급 자체를 피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코로나 추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은 안 됐고, 실무적으로 계속 논의하자고 서로 말씀을 나누셨다”며 “추가적으로 실무적 현안논의에 대해서는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제가 실무적으로 그 라인에서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장 실장은 “인사문제도 관련해서 이철희 수석과 제가 실무적으로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며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당선인께서 국가의 안보 관련된 문제를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한치의 누수가 없도록 서로 최선을 다해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이전과 관련해 안보 공백을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에서 협조 의사를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문 대통령이 집무실 이전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기로 했고, 특히 문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지역 판단은 차기 정부의 몫”이라고 명확히 했다.
장 실장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예비비와 관련해선 “절차적으로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면서도 “제가 느끼기에는 실무적으로 시기나 이전 내용을 공유해서 문 대통령께서 협조하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쟁점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잠재적 뇌관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양측이 사전에 의제를 정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자고 했던 것처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도 “화기애애하게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 나눴다”고 자평했다.
장 실장은 “두분이 서로 너무 존중하시는 느낌이었고, 또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현정권과 차기정부의 정권 인수인계를 정말 원활하게 잘 해야되겠다는 의지들이 두분이 다 계신 거 같다”며 “언론이나 국민이 느끼시는 어떤 갈등이나 이런 것들을 오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굉장히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셨다”고 부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이날 회동을 계기로 앙금을 일정 부분 풀고 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추가 회동이나 정례 회동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김영삼 대통령·김대중 당선인이 IMF 외환위기 극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주례회동을 가졌던 것처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추가 회동에 나설 만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장 실장은 “차후 만날 계획은 따로 잡지 않으셨다”며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자신이 당선인께서 협조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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