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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작별하지 않는다’부터

2024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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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이도이동 남문서점 한 켠에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추천한 서적이 진열돼 있다.[뉴시스]
“이 책에는 인간 행동의 일부가 직접적으로 연결이 돼 있다.”

한국 사상 첫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54)은 자신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2021년 출간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추천했다.

‘방금 당신을 알게 된 사람에게 어떤 책부터 읽으라고 제안하고 싶나’라는 노벨위원회의 질문에 한강은 “내 생각에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을 좋아한다”며 “따라서 제 가장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경하가 꾸었던 꿈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한강이 직접 겪은 꿈이 반영됐다. 한강은 2021년 당시 “5월 광주를 그린 ‘소년이 온다’ 발표 후 악몽을 계속 꿨는데 6월 말에 이 꿈을 꿨다”며 “눈 내리는 벌판을 걷고 있었고 벌판 끝에 검은 통나무 수천, 수만 그루가 심겨 있었다. 그 뒤에 봉분들이 있어 무덤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9쪽)

이 무지몽매 어찌할꼬 … 한강 작가 책 ‘채식주의자’ 교육청이 폐기 지시

한강은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운동화에 물이 밟혀 돌아보니 지평선인 줄 알았던 곳이 바다였다”며 “봉분 아래 뼈들이 쓸려가 버렸겠구나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이어 “꿈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했다”며 “잘 모르겠지만 이게 언젠가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았다”고 알린 바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꾸었던 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 내리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등성이까지 심겨 있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생각하는 사이 어느 순간 발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그는 무덤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채로 꿈에서 깬다.

비극적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길어 올린, 그럼에도 인간을 끝내 인간이게 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에 실려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44~45쪽)

작품에 등장하는 ‘새’와 ‘눈’도 의미가 담겼다.

한강은 “새는 어떻게든지 살리고 싶은, 모든 걸 걸고라도 구하고 싶은 그런 어떤 것”이라고 했다. 이어 “눈은 죽음과 삶 사이, 인간의 어둠과 빛 사이를 가득 채우는 그런 것”이라고 표현했다.

경하는 천신만고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한다. 그는 이곳에서 70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한다. 온 가족을 잃고 감옥에서 15년을 보내야 했던 아버지와 부모와 동생을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어머니의 이야기를 접한다. 학살 이후 오빠의 행적을 찾는 일에 수십 년을 바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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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도,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기도,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지만 그중 하나를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을 고르고 싶다”며 “소설을 쓰면서 그 상태를 잊지 않으려고 했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일평생 그랬던 것처럼, 인선은 어머니의 삶이 자신에게 스며오는 것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사랑을 외면하지 못하고, 경하 또한 인선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으로 겹쳐지는 것에 힘겨워하면서도 그 마음을 내치지 못한다.

“이 눈보라를 뚫고 오늘밤 그녀의 집으로 갈 만큼 그 새를 사랑하지 않는다”(88쪽)고,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152쪽)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그 사랑에 손을 내밀어 기어이 고통을 택하는 것이, 그것만이 오직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길이라고 소설은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절멸로부터 삶을 지켜내는 길이리라고.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언젠가부터 그의 새 소설 앞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된다. 누구나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작가들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평했다.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작가의 말’ 중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은 한강의 의지가 담겼다.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껴안고 계속 나아가겠다는 결의”라고 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정심의 마음을 매 순간 들여다보았고, 그 사랑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경험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겠습니다.”(한강)

tide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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