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방 하원이 수천억 달러 규모의 세금 감면 조치를 담은 감세 법안을 통과시키자 미국의 차입 비용이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22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이날 오전 5.15%를 넘어 2007년 이후 최고치에 도달했다. 이후 오후 거래에선 시장이 회복돼 이날 30년물은 5.045%로 장을 마감했다. 이 역시 2023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이다.
이날 하원에서 통과된 감세 법안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기 행정부 시절 단행한 감세 조치를 확대하고 영구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행정부는 감세 효과로 경제 호황을 기대하지만,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 법안이 향후 10년간 연방 부채를 2조4000억 달러 늘릴 것으로 예측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1일 종료된 2024 회계연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6%가 넘는 재정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쟁이나 금융위기 시기를 제외하면 전례 없는 수준이다.
최근 몇 년간 금리가 오르면서 미국의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CBO에 따르면 지난 회계연도 기준 미국의 국채 이자 비용은 8810억 달러로, 2021년의 두 배를 넘었고 이는 국방비나 메디케어 지출보다 많은 수준이다.
부채가 계속 불어나면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게 된다. 30년물 국채 금리가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자들이 미국의 재정 악화를 우려해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이자 부담은 늘고,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백악관의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장은 “이번 감세 법안은 재정 퍼즐의 일부에 불과하다”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주도하는 정부효율부(DOGE)에서 마련한 수천억 달러 규모의 지출 삭감안도 별도 입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로 3조 달러의 추가 세수를 확보해 재정 균형을 맞추겠다고 덧붙였다.
미국 신용등급 하향, 외국인도 ‘국채 회의론’
이런 가운데 미국의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의 감세 법안, 부채 증가에 따른 재정 악화 등 전반적 우려를 이유로 미국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에 앞서 피치(Fitch)와 S&P는 이미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자산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9조 달러 이상의 미 국채가 해외에 보유돼 있는데 이는 1년 전보다 12%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최근 국채 입찰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간접 입찰 비율이 줄었는데, 이는 더 높은 수익률 없이 국채를 사지 않겠다는 신호다.
바클레이스 은행의 글로벌 리서치 부문장 아제이 라자댜크샤는 “지난 20년간 미 달러 자산에 쏠렸던 투자가 최근 다소 조심스러워지고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제 달러에서 수익을 실현할 때’라고 판단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뉴욕 소재 헤지펀드 언리미티드 펀드의 최고경영자(CEO) 밥 엘리엇은 “성장률이 둔화되는 구조적 환경에서 정부가 계속 막대한 부채를 누적하면 과연 투자자들이 어떻게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며 시장의 우려를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