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G Pam Bondi responds to the explosion at a fertility clinic in Palm Springs, California:
미국 사회가 다시 한번 극단주의 테러의 충격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생명을 지키겠다며 낙태 클리닉을 공격하던 이들과는 정반대의 사상, “새 생명은 태어나선 안 된다”는 반출생주의자의 폭탄 테러가 현실이 됐다.
17일 오전, 팜스프링의 한 난임 클리닉 앞에서 차량이 폭발해 용의자 본인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FBI는 이를 의도된 테러 행위로 공식 규정했다. 이 병원은 시험관 아기 시술과 배아 보관으로 유명한 생식 의료기관이었다.
당시 주말로 인해 병원이 운영되지 않았고, 연구 및 보관 시설은 별도 건물에 위치해 있어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폭발의 위력은 컸다. 반경 수 킬로미터까지 진동이 전달됐고, 인근 상점 유리가 파손됐으며, 한때 도심 일대에 접근금지령까지 내려졌다.
“더 이상 태어나선 안 된다”…폭탄을 품은 철학
FBI는 용의자가 생전에 온라인에 남긴 글에서 “세상에 더는 아이가 태어나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출산 자체를 비윤리적 행위로 규정하는 ‘반출생주의(Antinatalism)’ 사상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이 사상은 단순히 출산을 꺼리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고통이며, 생명을 낳는 행위는 그 고통을 강제로 강요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산을 도덕적 폭력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주장은 철학계 일각에서도 논쟁적으로 논의돼 왔지만, 실제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Explosion near medical facility in Palm Springs, California, on Saturday.
이번 사건은 반출생주의라는 사상이 극단적 형태로 구현된 첫 테러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미국에선 낙태를 반대한다며 여성 건강 클리닉에 총기를 난사하거나 폭발물을 설치한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여성의 생식 권리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이런 테러는 주로 기독교 근본주의와 보수주의 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그 이념의 방향이 완전히 반대일 뿐, ‘생명을 통제하려는 자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뿌리는 같다. 생명을 지키겠다는 명분도, 생명을 막겠다는 철학도 결국 ‘타인의 결정권’을 무력화하고, 스스로를 정의의 심판자로 착각한 자의 폭력으로 귀결된 것이다.
팸 본디 연방 법무장관은 이번 사건 직후 성명을 내고 “여성과 어머니는 이 나라의 심장”이라며, “난임 클리닉을 겨냥한 폭력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 병원의 의사 마헤르 압달라 박사 역시 “그날은 환자가 없는 날이라 정말 다행이었다”며 안도의 목소리를 내야 했다.
팜스프링은 LA에서 동쪽으로 약 2시간 떨어진 고급 리조트 도시로, 정치적 갈등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생식과 출산이라는 민감한 주제가 이념 전쟁터로 떠오르면서, 이제는 난임 치료조차 공격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왔다.
반출생주의의 철학적 정당성을 논할 여지는 있을지 몰라도, 그 어떤 사상도 폭력으로 실현되는 순간 정당성을 잃는다. 생명을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개인이 선택할 자유다.
문제는, 그 선택의 자유를 자신의 신념으로 제거하려 드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제 미국 사회는 묻고 있다. 낙태를 금지하겠다는 폭력과, 출산을 막겠다는 폭력 사이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서야 하는가.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