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와 내가 쫓고 있는 꿈 속을/ 헤메며 다니다 보니/ 늙어버린 내겐 추억만 남았네요/ 날 위해 주는 누군가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앞으로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해 줘요’
홍콩 출신 배우 유덕화(刘德华)의 ‘봉배도저(奉陪到底), 펑페이다오디’ 노래다.
멜로디도 무척이나 감미롭지만 가사 또한 죽을 때까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불변의 사랑을 고백하는 꿈결같이 포근하다. 헌데 이 말도 경우에 따라서 전혀 다른 뉴앙스를 주는 의미로 바뀌기도 한다. 사랑이나 우정이 아니라 결사항전의 대적이다.
중국 전국시대에는 외교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질을 이용했다. 이는 원래 서로 간의 침략을 막으려는 의도였는데 인질이 된 인물의 비중에 따라 상황이 달랐다. 약한 나라에서 강한 나라로 보내는 인질은 태자같은 아주 중요한 인물을 보냈고 강한 나라에서 약한 나라로 보내는 인질은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닌 왕족의 한 사람을 보냈다.
이에 따라 왕자같은 인물을 인질로 잡은 나라는 그가 나중에 귀국해 중요한 위치에 오르면 상호간의 유리한 정책을 펼 것을 기대하고 환대를 베풀어 주고 인질이 된 왕자는 자국에 유리하도록 로비를 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적대국이나 약소국에 보내진 별 볼일 없는 인질은 처우와 대접을 시원찮게 받고 학대와 모멸도 감수해야 했다.
전국시대 초나라는 제나라와 외교적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왕자를 제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헌데 초나라 왕이 세상을 떠나자 인질로 있던 왕자가 귀국하여 새로운 초나라 왕이 되어야 했지만 제나라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초나라 왕자가 귀국하게 되면 제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초(楚)나라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이에 제나라 왕은 연회를 베풀어 초나라 왕자를 계속 머물게 하려 했고 왕자는 도망갈 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초나라 사신이 제나라 왕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즐거우시다면 신(臣)도 기꺼이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奉陪到底: 펑페이다오디).’
겉으로는 예의를 갖춰 술자리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표현이었지만 실제로는 ‘왕자를 끝까지 지켜 귀국시키도록 행동하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담긴 강한 결의인 동시에 일종의 협박을 내포한 말이었다.
이 발언에 제나라 왕은 더 이상 초나라 왕자를 억지로 붙잡지 않고 그를 인질에서 풀어줬다. 귀국 후 왕위에 오르니 그가 초양왕이다.
이 후 ‘펑페이다오디(奉陪到底)’는 외교적 자리나 비즈니스 상황에서 ‘상대를 끝까지 응대하겠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허나 이 표현에는 예의와 인내, 결의라는 세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음이다. 말하자면 ‘끝까지 상대해 줄테니 해볼테면 해보자’다. 호의적인 동행이 아니라 굴복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의 대적인 거다.
미국과 중국이 상호관세에 똑같은 수준의 맞불 관세로 맞서며 ‘강 대 강(强对强)’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중국이 2차 미·중 관세 전쟁을 맞이하며 새 구호를 내놓았는데 바로 ‘펑페이다오디’다.
미국과 장기전을 치를 각오가 담겨있는 거다. 1차 미·중 무역 전쟁이었던 2018년만 해도 확신이 부족해 ‘장기전’이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런 중국이 이번엔 제나라로부터 왕자를 뻬내 지킨 초나라처럼 두둑한 배짱있어 보인다.
과연 트럼프가 표방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시진핑의 ‘中国梦(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슬로건 하에 서로 벼르는 건곤일척의 승부싸움 태세가 어찌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