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둔촌주공, 어쩌다 공사 중단 파국 맞았나
‘단군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불리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재건축 사업의 공사가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으로 전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조합 측은 내달 초·중순 총회를 열어 계약해지에 나서겠다고 경고한 가운데 양측의 입장차이가 큰 만큼 장기 소송전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19일 정비관련 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아파트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지난 15일부터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철수했다.
시공사업단은 공사장 곳곳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공사장 전면 출입 통제에 들어갔다.
2020년 2월 착공을 시작한 이후 2년2개월 만에 공사가 멈춘 것이다. 현재 사업장은 전체 공정의 52% 정도 진행된 상황으로, 공정률이 50%를 넘은 대단지 재건축 공사가 중단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85개동 미니신도시급 단지 2020년 첫 삽, 출발은 좋았는데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강동구 둔촌1동 170-1번지 일대 지상 최고 35층 85개동 1만2032가구(임대 1천46가구 포함) 규모의 ‘미니신도시급’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이다.
조합원 수만 6100명에 달하는 데다 조 단위의 공사비가 들어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서울 분양시장 최대어’라는 별명이 붙으며 사업 시작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둔촌주공 아파트는 지난 2009년 12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본격화됐고, 2010년 9월 시공사 선정과 2017년 7월 이주 시작, 2019년 12월 철거 등의 과정을 거쳐 사업이 이뤄져 왔다.
대규모 사업인데다 이해관계자 복잡하게 얽혀있어 잡음이 적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2020년 2월 첫 삽을 뜨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첫 삽을 뜬지 4개월 만인 2020년 6월 25일 시공사업단과 전 조합이 맺은 공사비 증액 변경계약은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 전임 조합장과 시공사업단이 기존 2조6708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증액하는 계약을 체결한 게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된 갈등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공사비 5586억원 증액은 당초 원안보다 가구수가 늘어난 데다 조합 측 자재 고급화와 완자재 가격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현 조합 집행부는 이 계약이 한국부동산원의 감정 결과를 반영한 총회를 거치지 않았고, 당시 조합장이 해임된 당일에 증액 계약이 맺어져 적법하지 않은 계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조합은 지난달 21일 시공사업단을 상대로 서울동부지법에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계약변경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6일에는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2020년 6월 25일 의결을 취소하는 안건도 처리했다.
반면 시공사업단은 적법한 계약이었고, 관할 강동구청의 인가까지 받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시공사업단은 철거공사까지 포함해 3년 이상 공사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현재까지 1조7000억원가량 투입된 ‘외상 공사’를 더 이상은 계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공사업단은 지난 15일 입장문을 내고 “공사도급변경계약을 근거로 1만2032가구 공사를 하고 있으나 조합은 공사의 근거가 되는 공사도급변경계약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 더 이상 공사를 지속할 계약적,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태”라며 조합 귀책에 따른 공사 중단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될 것에 대한 우려도 전한다”고 덧붙였다.

◆내달 9일 이후 총회 열어 계약해지 의결할 듯
이에 맞서 조합은 공사 중단이 10일 이상 이어지면 시공사업단과의 계약을 해지한다는 초강수까지 꺼내든 상태다.
조합은 10일 이상 공사가 중단되는 오는 25일 이후 이사회를 열어 총회 일정을 정하게 되는데, 총회는 이사회 의결 후 14일의 공고기간이 필요하다. 이에 물리적으로 내달 9일 이후 총회를 열어 계약해지에 나설 수 있다.
조합 측은 최대한 서둘러 계약해지 안건을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시공사업단 쪽에서 강하게 나오고 있어서 조합 쪽에선 방법은 개약해지 밖에 없다”며 “이사회에서 계약해지 총회 날짜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더 이상 진전 없이 지금 이 상태로라면 최대한 빨리 (계약해지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합 측 계약해지 나서면 각종 소송전 불가피
조합과 시공사업단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각종 소송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시가 중재했던 조합과 시공사업단 사이 협상은 3월 말 이후 중단됐고, 지난 15일 공사 중단 이후에도 양측은 물밑접촉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시공사업단은 공사비 증액 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이를 안건에 포함시켜야 협상에 응하겠다는 입장이나 조합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공사 중단 이후에도 양측 물밑접촉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합 관계자도 “협상을 계속할 수 있고, 대화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쪽에서는 우선 변경 계약을 인정하고 사업이 늦어지는 것도 조합 탓임을 인정하라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조합이 총회를 열어 ‘계약해지’를 안건 의결한다고 해서 바로 해지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조합이 계약을 해지하려면 법원에서 ‘시공사업 해지권’을 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법률적으로 이 사태의 책임이 시공사업단에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소송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시공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유치권을 해소해야 하는데 이 또한 소송도 필요하다.
시공사업단 측도 계약해지 때는 효력중지 가처분, 손해배상 청구 등 본격적인 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진 건 아니고 검토단계에 있지만 조합이 시공사 계약해지를 추진할 경우 그에 대한 가처분 소송, 손해배상 청구 등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이 계약을 해지해 사태가 장기화되면 금전적으로도 양 측 모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우선 조합 측이 금융권으로부터 받은 이주비 대출과 사업비 대출이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연간 이자 부담이 8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조합이 부담해야 할 이자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 비용은 오는 7월께부터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한다. 이주비 대출 이자의 경우 지난 1월부터 조합원들이 각자 충당하고 있다.
조합 측 관계자는 “지금 얘기할 단계가 아니지만 금융기관들과 협의를 해 나갈 것”이라며 “만기 연장이 안 될 경우 등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공사업단 역시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막대한 지체 보상금의 부담과 함께 지금까지 투입된 공사비 1조7000억원의 금융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강대강 대치에 수천명 조합원 고통 커져
정비업계는 올해 상반기 예정된 분양 일정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내년 8월로 예정돼 있는 입주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조합원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게시판에는 둔촌주공 재건축 분쟁 관련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조합원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조합원 6000명은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예정대로 내년에 따뜻한 집으로 입주하고 싶다”며 “시공단이 진정으로 협상에 임하도록 도와달라”고 적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이주 5년째 아직도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조합원”이라며 “시공사의 횡포와 막무가내식 공사진행에 적극 개입해 달라”고 적었다.
업계에서는 조합 측이 계약해지를 하려 해도 투입된 공사비 등 각종 비용 정산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데다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라 현실적으로 시공사를 바꾸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합이 시공사를 변경하려면 우선적으로 시공단이 설정해 놓은 유치권을 풀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사비 1조7000억원과 이에 들어간 제반비용, 금융비용을 일시불로 지급해야 한다”며 “유치권을 해소하는 소송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비업계에서는 건설업계 관행상 이미 공사가 50% 이상 진행 중인 현장에 다른 시공사가 들어오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의 공급물량 1만2032가구는 올해 서울 전체 공급예정물량의 4분의 1에 달한다. 입주가 지연되면 조합원들 피해뿐 아니라 공급이 부족한 서울 주택시장 안정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둔촌주공을 비롯해 대어급 단지들의 분양 일정이 불투명해지면서 서울 분양 시장은 한동안 공급 가뭄이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