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 그날이 언제였나 비오는데 / 사무치는 그리움을 나 어이 달래라고 /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원로가수 고(故) 현미(1938~2023)가 영면에 들어갔다.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현미의 영결식과 발인식이 엄수됐다.
흐린 날씨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된 영결식 사회는 코미디언 이용식이 봤다. 그는 “많은 분들이 현미 선배님의 90세 졸수연, 100세 상수연을 기대했지만 안타깝게 됐다”고 애도했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이 조사를 맡았다. 이 회장은 “수십년간 불러온 노래처럼 ‘떠날 때는 말없이’ 그렇게 한 마디 말씀도 없이 떠나가셨습니까. 파워풀한 가창력·뜨거운 열정은 세월이 흘러도 굳건했다”고 눈물로 돌아봤다. 그러면서 “아름답고 큰 별이 돼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시고 남은 열정과 못다한 꿈은 하늘나라에서 꼭 이루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상민 대한가수협회 이사와 가수 알리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박상민은 “대스타이자 닮고 싶은 선배님”이라고, 알리는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공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웠다”고 애도했다.
현미의 대표곡 ‘떠날 때는 말없이’가 조가(弔歌)로 울려 퍼졌다. 1964년 개봉한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 때는 말없이'(감독 김기덕) 주제곡으로 크게 히트했다. 원곡에선 현미의 애절한 목소리, 애수가 깃든 이봉조의 색소폰 소리로 심금을 울렸다.
조가가 영결식장을 채운 이후 가수 노사연·배우 한상진 등 유가족 분향·헌화, 장례위원장인 가수 서수남과 협회 이사진 등의 헌화가 이어졌다. 이후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다. 유해는 두 아들이 거주 중인 미국으로 옮겨진다. 현미는 그곳에서 영면에 든다.
현미는 1960~70녀대를 풍미한 가수다. 1957년 미8군 부대에서 여성 보컬그룹 ‘현시스터즈’로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독집음반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를 발매하며 정식 데뷔했다. 이 음반에 실렸던 ‘밤안개’가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미국 스타 재즈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냇 킹 콜 등이 불러 유명한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It’s A Lonesome Old Town)의 번안곡이었다.
이후 현미는 1964년 같은 해 개봉한 영화 ‘보고 싶은 얼굴'(감독 김성복)과 ‘나는 속았다'(감독 이강천)에 이례적으로 동시 삽입됐던 ‘보고 싶은 얼굴’을 비롯 ‘몽땅 내 사랑’ 등의 히트곡을 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세상을 떠났다. 정훈희, 하춘화, 설운도, 김흥국, 쟈니 리 등이 빈소를 찾았고 수많은 이들이 메시지 등을 남겨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