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성폭력 피해자의 말을 쉽게 믿지 않으려 하는가? 심지어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피해자를 탓하고 가해자의 미래를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미국 법학자인 데버라 터크하이머는 책 ‘불신당하는 말'(교양인)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무시하도록 구조화돼있는 형사 사법 체제의 결함을 분석하고 비판했다. 검사 출신인 터크하이머는 피해자의 신뢰성을 폄하해 우리의 신뢰성 인식을 왜곡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말하고, 그 보이지 않는 힘의 군집을 가리켜 ‘신뢰성 구조’라 부른다.
성폭력 피해자가 사실을 고발하자마자 신뢰성 구조가 즉각 작동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신뢰성 인식을 왜곡하는 사회적·문화적·법적 요인을 비롯해 그 밑바탕에 깔린 심리적 원인까지 살펴봄으로써 문제를 다각도에서 조명했다.
“죽음은 의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 죽음은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내가 사는 일상,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의료인류학자로 생애 말기 현장 연구를 해온 송병기는 책 ‘각자도사 사회'(어크로스)에서 생애 말기와 죽음의 경로를 밝혔다. 집·노인 돌봄·호스피스·콧줄·말기 의료결정에 이르기까지, 생애 말기 우리가 거치게 되는 장소와 의료 과정을 보여주고 고통받고 고립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열악한 주거 환경 속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노인에게는 집에서 죽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모든 인간은 의존적인데 왜 노인만 의존적인 존재처럼 딱지를 붙이는지, 정부 정책은 노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취약한 삶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환자의 상태와 삶의 질을 충분하게 향상시키지 않고 수명만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연명의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