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 칼럼(4) “주님, 우리는 왜 안되는지요?”

 

 흑인아이 John과 백인아이 Joe는 친한 친구다. John의 엄마는 Joe의 집에 일하러 다닌다. 그러다가 여름 방학이 되면 John은 엄마를 따라와 Joe와 함께 여러 가지 일을 돕는다. 그리고 둘은 더위를 피해 시냇가로 나간다. 마을 수영장이 있지만 흑인은 출입할 수 없어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도 흑인 출입금지로 Joe가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와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흑인들도 백인들과 동일하게 지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둘은 기쁜 마음으로 마을 수영장으로 달려가지만 수영을 할 수 없었다. 백인들이 수영장을 메워 버렸기 때문이다.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 남부 지역을 배경으로 데보라 와일즈 (Deborah Wiles)가 쓴 ‘1964년 여름(Freedom Summer)’ 책 이야기다. 1964년은 존슨 대통령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에 서명한 해다.
  100년 쯤 거슬어 올라가 보자.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 해방이 공식적으로 선언됐지만 흑인들은 일반 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특히 남부에서 흑인은 오랫동안 투표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던 흑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870년 비준된 수정헌법 15조(투표권)에 의해서 였다.

아마존 사이트 캡처. 데보라 와일즈 (Deborah Wiles)가 쓴 ‘1964년 여름(Freedom Summer)’
  그러나 남부에서는 흑인들과 함께 하는 걸 원하지 않았던 백인들이 헌법을 왜곡하고 악용하여 흑백분리를 공공연하게 외치면서 통칭 ‘짐 크로우(Jim Crow)’ 법안으로 흑인들의 권리를 빼앗고 차별했다. 투표소마다 문맹 시험이 치러졌고 인두세 증서까지 요구했다.

이로써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들이 사실상 투표장에 들어가 권리를 행사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KKK를 비롯한 백인우월 단체들은 공포감을 조성하고 위협은 물론 살인까지 자행했다.
   그러다가 1896년 플레시 판결(Plessy v Ferguson)에서 ‘분리하되 평등(separate but equal)’ 즉, ‘분리하되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면 합헌’이라는 판결로 흑백 강제 분리가 정당화 되었다.

그리고 이 판결은 ‘한 방울의 피’만 섞여도 유색인종으로 분류하는 ‘One drop’ 법칙으로도 연결됐다. 실제로1984년 루이지애나 법정은 완전한 백인 여성을 흑인으로 판정한 적도 있다. 무려 230 여년 전, 프랑스 노예 농장주와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이의 후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만연한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저항은 경찰과 KKK 민병대들의 유착으로 벽에 부딪혔고 그들의 흑인에 대한 억압과 폭력은 참혹했다. 1939년 흑인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라는 노래는 이를 잘 반영한다.

‘남부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려요/잎과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아리가 매달린 채 흔들리죠’ 백인들로부터 린치당하고 나무에 목 매달린  흑인들의 끔찍한 모습을 빗댄 거다. 

  마침내 1954년 브라운 판결에 의해서 60 년 동안이나 사회 모든 곳에서 일상적인 인종분리가 시행되는 근거가 되던 플레시 판결은 폐기되었다. 노예해방으로부터 90년 만이었다.
  그럼에도 나아진 건 별로 없었다. 이 때문에 흑인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다. 1955년 몽고메리 시에서

로사 팍스 여성이 버스에서 ‘흑인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규정한 법을 어기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체포된 사건을 시작으로해서 1963년 링컨 기념관 앞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들의 후손들과 노예소유주들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연설이 절정을 이룬 이듬해인 1964년 존슨 대통령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에 서명했다.

‘모든 인간은 인종, 피부색, 종교, 국적에 상관없이 공공시설을 평등하게 즐길 권리가 있다’는 것.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되자 백인들은 수영장, 아이스크림 가게 등 많은 가게들을 문닫았다. 흑인들과 같이 나누어 쓰느니 차라리 문을 닫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어서 소수인종의 자유로운 투표를 보장하는 새 투표관련법도 제정됐다. 그 결과 흑인들의 투표권이 인정되었으며 흑인들에게도 많은 곳의 문이 열리게 되기는 했다. 허나 차별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채 그리고나서도 버락 오바마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때까지 50년이나 더 지나야 했다. 그럼에도 인종차별 문제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 코로나 여파로 아시안을 향한 인종 혐오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도 해리 왕손 부부의 왕실의 인종차별의 폭로가 나오면서 이 문제가 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 흑인 혼혈인 마클의 임신을 두고 태어날 아기 피부색을 문제 삼았다는 내용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국은 노예해방이 미국보다도 30년이나 앞선 나라였다. 그러나 인종 차별 금지법은 100년이나 뒤 늦게 통과된 나라이기도 하다.

  인종차별 문제가 풀지 못하는 미완의 숙제로 남겨져 있는 지금, 모두가 다시금 기억해 내야 할 노래가 있다.

비틀즈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1981년 발표해 스티브 원더와 함께 부른 ‘Ebony and Ivory’다. Ebony(에보니)는 검은 빛깔의 단단한 나무, 흑단(黑檀)이고, Ivory(아이보리)는 코끼리의 상아(象牙)로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지칭한다.

  ‘에보니와 아이보리/완전한 화음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지요/내 피아노 건반 위에 나란히 놓여서/ (중략) /오, 주님 우리는 왜 안 되는지요?’